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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문헌 목록 〉17. 17世 〉27. <절제공>원모정기(遠慕亭記)휘정열(諱廷烈)
1. 문헌 목록 〉17. 17世 〉29. <태사공>조봉대부휘상혁묘갈문(朝奉大夫諱尙爀墓碣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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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태사공>통덕랑조공휘상악포양장(通德郎趙公諱尚岳褒揚狀)
<태사공후>통덕랑조공휘상악포양장(通德郎趙公諱尚岳褒揚狀) 伏以聲聞過情君子名實不同正人取苟有卓異之孝純美之行而未闡揚於當世則雖曰君子之無悶而豈非士林之慨惜乎竊伏見潭陽士人趙尚岳即太師玉川君諱璵之後兵曹佐郎諱亨謙之子也其七代祖縣監公諱愈殉節島夷之亂以簪纓世族孝行節義己代傳家之箕裘惟此尚岳天姿端雅性質溫粹生纔免懷己乳誠孝克養親志溫清之節定省之行根於天性己為鄉黨賞歎矣及其出繼于禮曹正郎公也受孝經一書為家庭之訓自為幼少己若老成粤在丁酉冬正郎易簀京第在鄉聞訃遠地奔哭初終凡節一遵禮制期於無憾時丁隆冬返櫬故土每到宿所停枢處旁人勸之護寒則終始不聽始不入房舍侍棺攀號未嘗頃刻離側一朔冷處竟不嬰疾人謂孝感所致中年緬禮時一自破窆哀絰侍殯經畫霄哭僻無異袒括每當忌祀必謹齋沐祭需各品躬自視飭以寓羊喪之感正郎公墓所越在一嶺而每省掃不以寒暑而或廢墓道文字經營數十稔克盡顯揚永慕追感老而深篤且以慕先敦睦之行言之其宗孫家甚貧寠則身以支孫先置累代位土使之奉祀其先壟散在各處而守護之節不推諸宗極力辦財各置墓位不絕歲祭之儀諸族失時嫁娶者量八助給趁期成就勤儉成家不以自己溫飽為意每與昆季式好湛樂疾病相分弟姪等排分田宅各安其生又推其仁愛之心窮族之賙給貧交之賑活己是平日常事而當已庚大無見一洞濱死之人斥賣家庄每月私賑盡其任恤之心則賴此一人之惠鄉憐之延活者抑為幾百人命战其他秉心堅確踐履篤實不事科業用工於修齊年至七旬不與人雌黃平生操守有非鄉曲凡儒之可比則生等居在同省凤飽其孝行故茲將公議齊聲仰龥于觀風察俗之下伏願採納轉達于 天陛俾蒙褒揚之典以樹風聲之地千萬幸甚 통덕랑공휘상악포양장(通德郞公諱尙岳褒揚狀) 엎드려 생각하니 성문이 정을 지나쳐 군자의 이름과 실상이 같지 안한 것은 정직한 사람이 취지 아니하고 진실로 탁이한 효도와 순미한 행실이 있고 당세에 드날리지 못 한즉 비록 군자는 근심할 것 없으나 어찌 사림의 개탄할자 아니겠는가. 내가 엎드려 보니 담양사인(潭陽士人) 조상악(趙尙岳)은 곳 태사 옥천군 휘 여(璵)의 후손이요 병조좌랑 휘 형겸(亨謙)의 아들이며 그 七대조 현감공 휘 유(愈)는 임진왜란 순국하고 관 위명덕(官位名德)이 혁혁한 세족으로 효향과 절의로써 전가의 세업을 삼았다. 오직 이 상악(尚岳)은 천자가 단정하고 바르며 성질이 다시고 맑아 나서 겨우 어머니 품을 떠 날 때 이미 지성한 효도가 있어 능히 어버이 뜻을 길우고 다시고 서늘하게 한 절차와 밤 새벽 문안의 행실은 천성에 뿌리한 것으로 이미 향방의 탄생한 바 되었다. 예조정랑 공에게 출계하여 효경 一권을 받아가 정지훈을 삼고 어려서부터 이미로 성한 사람 살았다. 정유(丁酉)년 겨울에 정랑공이 서울집에서 별세하니 시골에서 부고를 듣고 먼곳 에 달려가서 통곡하며 초종 범절을 한결같이 예제에 따라 여감없이 하고 때는 엄동인데 고향으로 반장할 때 매양 정상처 령구(靈柩) 결에서 노숙(露宿)하며 너를 붙들고 통곡하며 방인(傍人)이 방에 들어가 어야한하라 권하되 종시 듣지 않고 월여냉처(月餘冷處)에 촉상치 아니하니 사람이 효사의 감동이라 하였다. 중년 면례(緬禮 即移葬) 할때에 파묘(破墓)한 날로부터 최복과 수요질을 갖추고 주야로 가슴을 두드리며 통곡하기를 초상 시 같이하고 매양 제일을 당하면 반드시 목욕재계하며 제물을 몸소 간검하여서 추모의 정을 부쳤다. 정랑공 묘소가 높은 재넘어 있으되 매양 성묘를 한서(寒暑)로써 폐치 않고 묘도문자(墓道文字)를 수十년 경영하여 능히 천양하고 길게 생각하며 따라서 느끼기를 늙도록 더욱 도탑에 하였다. 또 그 선조를 생각하고 돈목한 행실로써 말하면 종가가 심히 빈한하니 스스로 루대 제위토를 봉하여 향사케 하고 선산이 각처에 흩어져 있는데 수호할 절차를 족내에게 미루지 않고 힘을 다하여 재물을 모와 각기 직토(直土)를 두어 세제를 거행케 하였다. 족내에서 가취(嫁聚)의 때를 잃은자 있으면 쓸것을 헤 려 도와 성혼하게 하고 근검 성가하였으되 자기의 다시고 배부른 것으로써 마음하지 않고 매양 형제 서로 좋아하고 담락하며 아우와 족하에게 전답과 가택을 나누어줘 각 기 그 생활을 즐겁게 하고 또 그 어질고 사랑한 마음을 미루어 궁한 겨레를 돕기와 가난한 친구를 구제한 것은 평일 상사요 기경(己庚)때 흉에 온마을 사람이 기사지경이 됨을 보고 집과 전토를 팔아 매달 스스로 기민을 먹여 그 측은한 마음을 다하니 이 한 사람의 착한 마음으로 고을 사람이 힘입어 산자 멧百人이 될런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도다. 또 마음 가짐이 견확(堅確)하고 조행이 착실하며 수신제가를 힘쓰고 七十세가 되도록 사람으로 더불어 한말을 고치지 아니하니 그 평생 조행을 시골 범상한 선비에 비할바 아닌즉 생등이 같은 지방에 살아 일찍 그 효행을 잘 아는고로 이에 공의를 잡아 소리를 합하여 우러러 풍교로 보고 풍속을 살핀 각하께 부르고저 고하오니 엎드려 원하옵건대 채납하시여 조정에 전달하여 하여금 포양의 은전을 무릅써 창선벌악(彰善罰惡)의 풍성을 심어 주었으면 千萬 다행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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